
1996년 여름, 경기도 부천, Canon A-1, Kodak Trix 400
내가 살던 부천집(본가)은 아직도 개발제한 구역에 묶여 있다. 지금은 그래도 덜 하지만 당시 부천집은 어느 시골의 전형적인 그런 모습을 띄고 있었다. 일요일 어느땐가 집사람과 말다툼을 한후 난 본가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은솔이 혼자만이 집 마당에 나와 앉아 있었다.
늘 할머니 치마폭에 매달려 지내던 조카는 식구들이 모두 자리를 비워 눈물과 배고픔, 그리고 두려움에 말이 아니었다. 당시의 모습이 은솔이가 4살때 였던것으로 기억되는데, 지금 은솔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다.
난 사진속 은솔이의 모습에서 과거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나의 선배 세대에서야 물론 더욱 더 어려웠겠지만, 나역시 그리 넉넉치 않은 시절을 겪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모습이 나의 조카 모습속에서 보여지다니...
어쩌면, 우리세대가 살아온 그 시절은 힘들고, 배고프고, 두러웠던 시기였지 않았나 싶다.
지금 아이들의 모습속에선 소매가 뻣뻣해 지도록 코를 문지르는 아이들도, 손등에서 허엿게 때가 이는 아이들도, 너무 크거나 너무짧은 '쯔봉'과 '우아기'를 입은 아이들도, 뒷굼치가 훵하니 들어나는 양말을 신은 아이들도, 검정색의 털신발(신발 목부문에 털이 보송보송한)을 신은 아이들도, 개털 귀마개를 하고 등교하는 아이들도, 얼굴이 벌것케 터진 그런 아이들도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땐 참 즐거웠다.
배고픔과 추억이 늘 비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말 속에는 배고픈 시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은근히 내포한체 그때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마치 전쟁터에서의 무용담을 이야기 하는 그런 맘으로 과거의 어려움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배고프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학교에 다니지 못할정도로 가난하지도 않았으며, 특별한 우여곡절을 격지도 않았는데, 그래도 당시를 이야기 하게되면, 그때는 그랬었지... 로 시작하게 된다.
조카의 모습속에서 나의 어릴적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것...
그 시절을 추억이라 말할 수 있다는것
그리고 앞으로 그 추억을 계속해서 마음 푸근해지는 기억으로 기억할 수 있다는것...
그래서 난 행복한가보다.
몇몇 사람들은 너무도 힘들어 기억하기조차 싫어 하거나 기억속에서 지워버린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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