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 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죽는다는것이 생명의 가장 큰 증거이듯이 말이다. 만약 죽지않는 다면, 살아있음의 의미를, 새로움에 대한 의미를 그리고 영원함의 의미를 실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나이들어가고 있고 생명의 순환과정 중 꽃이 시들어가듯 늙어가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삶의 의미를 더욱 강력하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유한 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에 비해 가치가 덜한 것이 아니라 유한 하기 때문에 더욱더 소숭한 것. 그것이 생명이다.
영원하다면, 또 다른 탄생도 시작도 없을 일이다.
영원하지 않기에 내가 있는 것이고, 가족이 있는 것이고 인류가 있는 것인 셈이다. 우리의 생활속에서 필요는 새로움의 가장 근본적인 힘이다. 이것은 생명활동에서도 마찮가지이다. 진화적 관점에서본다면, 환경과 적응을 통한 선택은 필요에의한 새로움인 것이다.
꽃이 열매를 맺고 떨어지는 것은 다음세대를 준비하는 것이고, 낙엽이 겨울바람에 힘없이 날리는 까닭은 봄을 위한 준비이며, 나이들어 죽는 다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확실한 준비인 것 처럼, 유한은 가장 확실한 필요라는 것이다.
그러나, 피기전에 떨어지는 꽃과 물이 없어 시드는 잎, 병으로 쇠약해져 가는 육체는 <새로움이라는 기적>을 마지할 기회 조차 박탈당하는 것과 같아서 안타깝고 애닯픈 것이리라. 살아 있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나 한계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영위하는것이 생명에 대한 숭고한 태도인 것이다.
생명의 기원 전체를 통사적으로 살핀다면, 생명은 그 오랜시간을 유한 함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며, 서너차례의 대재앙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이다.
어른이 어른인 이유는 앞서 주어진 시간을 열심히 잘 살아내었고 삶이라는 적지않은 무게를 묵묵히 견디어 냈다는 것일 게다.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아니 작지 않은 소망이 있다면 이것이다. 이젠 돌이켜 부끄럽지 않도록 남아 있는 시간들, 그저 흘러가버릴 수 있는 시간들을 유의미한 것으로 바꾸어 가고 싶다는 것, 바로 그것이다.
나이들어 간다는 것은 늙어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담담하게 감당하며 살아 왔다는 것이며, 새로운 시작을 위한 마지막 기적의 불씨가 되어 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한함을 통해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만들어내고 있는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오늘 나이듦에 있어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살아야 겠다 고민하며 이글을 적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