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비의 꽃무늬 샌달

가족 이야기 | 2006/11/07 16:09 | by has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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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일이 다급해져 새벽 4시 반에서야 집에 들어 올 수 있었다.
계속되는 월드컵 경기 승리에 잠을 설치던 때라 더욱 더 피곤하고 힘이 든다. 조심스레 현관문을 따고 들어와 물먹은 솜마냥 쇼파에 풀석 주저 앉았다가 일어서려는데, 녀석이 일어나 눈을 비비며 말을 한다.


“아빠 지금이 몇 시야…”
“왜 은비야… 물먹고 싶어…, 왜 이렇게 일찍 일어 났어”
내가 묻는 말과는 상관없이 녀석은,
“엄마가 예쁜 샌달 사줬다…”
“그래, 어디 봐봐…”


과장된 표정과 말투로 대답한 후였다.
녀석은 자다 일어났음에도 쏜살같아 달려가 자기 잠자리 옆에 고이 모셔 놓았던 샌달을 들고 나온다.
아마도 녀석은 그것을 얼른 신어 볼 욕심에 잠을 설친 것이 틀림 없지 싶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있었다.
지난 새벽에 간간이 내리던 빗방울이 본격적으로 내리려는 모양이다.
아내의 부산한 아침 출근 준비에 눈을 떠야 했다. 꼭 그 소음이 아니더라도 곧 일어 나야 할 형편이었다.
여덟시 반을 조금 넘기고 있는 시간…
정신이 아찔 한 것이, 잠이 부족한 것 이상의 두려움이 느껴진다.


그런데, 이번엔 녀석이 울상이다.
오늘 아침에 그 예쁜 샌달을 신고 유치원에 갈 요량으로 그렇게 까지 들떠 있었는데, 비가와 못 신는다는 엄마의 말에 눈물이 그렁그렁 하다.


오늘은 다녀온다는 인사도 없이 그렇게 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샌달을 거실 한 구석에 벗어 놓고는 마지 못해 엄마를 따라 나서는 녀석의 뒷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전의 나에게 돌아 갈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이나 주문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저랬었던가…
없던 시절,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어디 그 예쁜 신발을 그렇게 원할 때, 덥석 덥석 사주던 부모들이 얼마나 있었던가?


그래도 난 형에 비하면 나은 편이었다.
형이 검정 고무신 세대 였다면, 난 하얀 고무신 세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겨울이면 ‘기차표’니, ‘말표’니 하는 까만 털신을 신을 정도였으니 형에 비하면 훨씬 양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명절이 되어서 운동화라도 사 주실라 치면, 행여 때나 묻을까, 달치나 않을까 노심초사 했던 생각이 그랬었지… 하는 생각에 까지 닿는다.


서른 중반을 이제 훌쩍 넘기게 된 지금…,
우리 세대가 그러했던가… 하는 것에서, 나도 그런 맘이 있었지… 하는 것에서, 각기 다른 생각이 스치운다.


늘 부족하여, 무언가를 맘 편히 즐겨 보지 못하던 세대의 나와 언제든 필요할 때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녀석 사이엔 참으로 커다란 강이 가로 막고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이 그 하나이고, 나이가 들어 가면서 저렇게 밤잠을 설쳐가며 기대에 부풀었던 적이 과연 몇 차례나 있었던가 하는 것이 두 번째이다.


부족 하다는 것, 그래서 늘 아껴야 했고 악착 같이 벌어야 했고, 참아야 했던 통칭 ‘아버지 세대’라 생각되는 나 역시 나의 아버지에 비해 더 자유분방했을 터 이지만, 이러한 이야기가 어디 중요한 이야기 이랴. 또 사소한 작은 일에 감격하고 설레었던 맘이 사라졌다 해서 때가 묻었지 않는가…,하는 식의 구태의연 한 말 역시 어디 대수 이랴.  


중요한 것은 내일은 날이 개어서 그렇게 고대하던 샌달을 신고 녀석이 유치원에 갈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런 것이 모두 부모 맘 아니겠는가 싶다.

2002년 6월 20일
2006/11/07 16:09 2006/11/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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